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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록 : 네 가지 시선 3회 - 어우동 편

열정 2.0 2024. 5. 2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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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본방을 바로 보지 못해서 OTT로 봤는데요.

이전부터 웨이브를 통해서 봤었는데, 저녁 8시가 지나도 퀵스타트로 방송이 뜨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나 뒤적거려봤는데. 웨이브는 늦게 뜨는 것 같더라구요. 이번엔 티빙으로 봤습니다.

이번주만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본방을 보지 못하지만 그 시간때에 빠른 '설록 : 네가지 시선'을 보실 분들은 티빙을 활용하시면 될 것 같네요.

 

이번 주 설록 : 네 가지 시선은 조선시대 로열패밀리의 성 스캔들의 주인공 어우동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덕분에 패널로 출연한 김새롬님과 신아영님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 상황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아무래도 조선시대 여성의 모습이라는 게 현재의 관점에서는 정말 이해안되는 점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그러실 수 있습니다. 특히나 방송을 보면서, 여성의 계급이라는 게 조선이 성리학으로 기틀을 마련하는 시점에는 더더욱 억압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주는 어우동이라고 하는 조선시대 초기 한 여성의 반란(?)으로 조선시대 여성들이 감내해야했던 점들을 과감없이 보여준 편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전반적으로 '설록 : 네 가지 시선'은 한 인물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한 후, 각 4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그 인물을 평가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주에도, 어우동에 대해서

첫번째 시선(역사학자) - 문신을 새기다. 사랑밖에 모르는 로열패밀리

두번째 시선(소설가) - 성리학에 반기를 든 혁명가

세번째 시선(역사교사) - 가족으로 본 어우동의 삶

네번째 시선(성전문가) - 팜므파탈 혹은 희생양

으로 평가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접했던 어우동의 모습이 영화 '어우동 : 주인 없는 꽃'이었는데요.

이 영화를 보면서도 저는 이전에 알고 있던 어우동과 다르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번 주 설록을 본 현재, 이 영화가 좀 더 어우동의 편에 서서 그녀의 삶을 다루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프로그램 초반에 다루었던  내용 중에 잘 모르던 것들에 대해 정리를 해볼까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설록 : 네 가지 시선을 시청하시면서 잠깐 잠깐 확인하시면서 이 글을 보시는 게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기존에 알고 계시던 용어들도 한 번 다시 보시면서 정리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모르는 용어 따라잡기

 

팜므 파탈

팜므 파탈(femme fatale)은 '파멸로 이끄는', '숙명적', '치명적'인 여성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용어입니다.

팜(femme)은 '여성'을, 파탈(fatale)은 '치명적인'을 뜻하죠.

팜므 파탈은 남성을 유혹하여 파멸로 이끄는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여성 캐릭터를 말합니다. 

팜므 파탈의 역사와 특징

- 역사: 팜므 파탈은 19세기 낭만주의 문학 작품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미술,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었습니다. 
- 특징: 팜므 파탈은 자신의 매력적인 외모와 섹슈얼리티를 동원해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여성 캐릭터입니다. 이들은 종종 남성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부적절한 여성상으로 여겨집니다.

대표적인 팜므 파탈 캐릭터

팜므 파탈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 카트린 트레이시: 영화 '바스트 오브 어 페인팅'에 등장하는 팜므 파탈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 남성을 유혹하고 파멸로 이끌었습니다.
-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역사적 인물인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권력과 야망을 위해 남성을 이용했던 대표적인 팜므 파탈로 알려져 있습니다.
- 메데이아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데이아는 자신의 남편을 배신하고 가족을 파괴한 대표적인 팜므 파탈 캐릭터입니다.

팜므 파탈의 사회문화적 의미

팜므 파탈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힘과 독립성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해석됩니다. 이들은 남성의 권력과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때로는 여성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팜므 파탈 캐릭터는 여성의 성적 자율성과 주체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여성을 위험하고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팜므 파탈의 현대적 해석

최근에는 팜므 파탈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팜므 파탈을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성적 주체성을 표현하는 긍정적인 캐릭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팜므 파탈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힘과 저항을 상징하는 존재로 재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팜므 파탈은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팜므 파탈의 현대적 활용

팜므 파탈 캐릭터는 현대 문화 콘텐츠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 게임 등에서 팜므 파탈 캐릭터는 여전히 인기 있는 소재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팜므 파탈 캐릭터를 통해 여성의 권리와 자율성을 표현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팜므 파탈은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전모

- 전모(牋帽)는 조선시대 기녀, 의녀 등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 사용한 쓰개입니다.
- 전모는 대나무로 모자의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기름먹인 종이를 발라 만든 모자입니다.

전모의 용도 및 착용 계층

- 조선 후기 풍속화를 보면 기생들이 외출할 때 전모를 자주 착용하던 모습이 보입니다. 
- 전모는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 주로 착용했던 모자로, 상류층 여성들이 쓰던 너울과는 구분됩니다.

전모의 특징

- 전모는 대나무로 만든 모자의 뼈대에 기름먹인 종이를 발라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 전모는 기름먹인 종이로 인해 광택이 나고 비가 와도 젖지 않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추가 정보: 조선시대 상류층 여성의 모자 - 너울

- 조선시대 상류층 여성들이 쓰던 외출용 모자로는 너울이 있었습니다.
- 너울은 전모와 달리 비단이나 망사로 만들어졌으며, 부유한 집안이나 궁중의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착용했습니다.

조선시대 삼종지도

- 삼종지도(三從之道)는 유교 윤리에 기반한 조선시대 여성의 행동 규범입니다.

- 삼종지도는 유교 사상에 기반한 개념으로,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처음 등장합니다.
- 조선시대에는 특히 숙종 이후 유교적 통제가 강화되면서 삼종지도가 여성에 대한 구속과 통제의 근거로 활용되었습니다.
- 긴 역사를 통해 여성들은 삼종지도를 자신을 설명하고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 삼종지도는 여성이 평생 동안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유교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시대에 강조되었습니다.

삼종지도의 내용

- 삼종지도는 "여자는 평생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이를 통해 여성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크게 제한되었으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매우 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종지도의 영향

- 조선시대에는 삼종지도를 근거로 여성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
- 최근에는 삼종지도를 현대 남성의 덕목으로 패러디한 '신(新) 삼종지도'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합니다.

추가 정보: 조선시대 여성의 열녀 관념

- 조선시대에는 삼종지도와 함께 열녀 관념이 강조되었습니다.
- 『삼강행실도』의 「열녀도(烈女圖)」와 조선왕조실록에는 남편을 따라 죽은 여성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 이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들이 유교적 윤리 아래 극단적인 순종과 희생을 강요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종지도에 대한 유교 내부의 반대 의견

- 일부 유교 학자들은 삼종지도가 지나치게 여성을 구속하고 차별한다고 비판했습니다.
-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삼종지도가 여성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이들은 여성도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삼종지도에 대한 비판적 견해의 영향

- 이러한 비판적 견해는 조선 후기 여성 교육 확대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일정 부분 기여했습니다.
- 그러나 삼종지도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어, 여성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카사노바

- 카사노바(Giacomo Casanova)는 18세기 이탈리아의 모험가, 작가, 시인, 소설가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성직자, 군인, 바이올리니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지만, 주로 여성 유혹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카사노바는 수많은 여성을 유혹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로 인해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의 여성 편력은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의 대명사로 여겨질 정도로 유명합니다.


최근에는 카사노바의 행동이 문란한 난봉꾼, 말썽꾼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 여성을 학대하거나 어린 소녀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카사노바의 업적

- 카사노바는 자신의 모험과 여성 편력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 『회상록』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18세기 유럽 사회와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어우동과 유럽의 카사노바 비교

공통점

- 둘 다 당시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벗어난 행동으로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 둘 다 여성 유혹과 관련된 스캔들로 인해 사회적 비판을 받았습니다.

차이점

- 어우동은 조선시대 여성으로, 남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비난받았습니다.
- 반면 카사노바는 유럽의 모험가로, 여성을 유혹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주된 행동이었습니다.
- 어우동은 조선시대 엄격한 윤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으로 인해 가문에서 파문되었지만, 카사노바는 오히려 그의 여성 유혹 행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추가 정보: 조선시대 여성의 결혼과 도덕 기준

- 조선시대에는 중매결혼이 일반적이었고, 여성의 도덕성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 따라서 어우동과 같이 기혼 여성이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종부시

- 종부시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 제도 중 하나로, 과거 시험 응시자들의 자질을 평가하는 시험이었습니다.
- 종부시는 과거 시험 중 가장 마지막에 치러지는 시험으로, 합격자를 최종적으로 선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종부시의 특징

- 종부시는 매우 엄격한 시험으로, 응시자들의 학문적 능력뿐만 아니라 인품과 자질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했습니다.
- 시험 과정에서 응시자들은 엄격한 예절과 도덕성을 요구받았으며, 부정행위나 불성실한 태도가 발견되면 즉시 퇴출되었습니다.
- 종부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최고 관료로 등용되어 국가 운영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종부시의 역할과 의의

- 종부시는 조선시대 관료 선발 제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이를 통해 조선 왕조는 유능하고 도덕성 있는 관료를 선발할 수 있었고, 이는 안정적인 국가 운영에 기여했습니다. 
- 종부시는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학문적 열정과 도덕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시험이었다고 평가됩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 제도

-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을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 과거 시험은 초시, 복시, 전시, 정시, 별시 등 다양한 단계로 구성되었으며, 종부시는 그 중 마지막 단계에 해당했습니다.
- 이를 통해 조선 왕조는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고 관료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형벌 제도

- 조선시대에는 태형(笞刑), 장형(杖刑), 도형(徒刑), 유형(流刑), 사형(死刑)의 5가지 주요 형벌 제도가 있었습니다.
- 이 중 태형과 장형은 신체형 처벌이었고, 도형과 유형은 자유형 처벌, 사형은 사형 처벌이었습니다.
- 비록 신체형 처벌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조선시대 형벌은 이전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된 편이었습니다.

조선시대 형벌의 특징

- 조선시대에는 명률(明律)을 기본 형법전으로 삼았지만, 이를 가중하거나 변용하기도 했습니다. 
- 특히 양반 계층에게는 신분 강등이나 재산 몰수 등의 추가 처벌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인에 대한 형벌이 더욱 가혹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형벌의 의의

- 조선시대 형벌 제도는 범죄 예방과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 비록 신체형 처벌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점차 완화되는 추세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 또한 양반 계층에 대한 추가 처벌은 신분제 사회에서의 차별적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형(笞刑)

- 태형은 범죄자의 엉덩이를 작은 대나무 막대기로 때리는 형벌이었습니다. 
- 범죄의 경중에 따라 5단계로 구분되었으며, 최대 100대까지 가해졌습니다.
- 조선시대 풍속화에서도 태형을 집행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일반적인 형벌이었습니다.
- 1920년 3.1운동 이후 개혁의 일환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장형(杖刑)

- 장형은 범죄자의 등이나 팔에 대나무 막대기로 때리는 형벌이었습니다.
- 최소 60대에서 최대 100대까지 집행되었으며, 10단위로 구분되었습니다.
- 조선시대에도 명나라의 형법전인 '대명률'을 도입하여 장형이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 장형은 신체형 처벌의 한 종류로, 자유형인 도형이나 유형에 비해 더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도형(徒刑)

- 도형은 일정 기간 동안 노역을 하는 자유형 처벌이었습니다.
- 범죄의 경중에 따라 1년에서 3년 사이의 기간 동안 노역을 해야 했습니다.
- 도형은 신체형 처벌인 태형이나 장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된 형벌이었습니다.

유형(流刑)

- 유형은 범죄자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는 형벌이었습니다.
- 조선시대에는 유형 판결을 내리기 전에 초심, 재심, 삼심 등 3단계의 심리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 유형은 자유형 처벌의 한 종류로, 범죄자를 멀리 보내 격리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사형(死刑)

- 사형은 범죄자를 처형하는 가장 극단적인 형벌이었습니다. 
- 사형은 초심, 재심, 삼심 등 3단계의 엄격한 심리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 사형은 가장 중범죄에 대해서만 내려졌으며,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했던 형벌이었습니다.


내훈(內訓)

- 내훈은 1475년 인수대비가 여성의 덕목과 훈육에 대해 저술한 책입니다.
- 내훈은 여성과 관련된 40여 종의 경전 내용과 50여 명의 여인들의 행장(行狀)을 모아 그 특질에 따라 7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내훈은 여성들이 지켜야 할 덕목과 행동 규범을 제시하고 있으며, 당시 여성들의 생활과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내훈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소학』, 『내훈』 등의 책을 읽고 행동하는 바가 이 책들에서 나온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내훈의 주요 내용

- 여성의 덕목: 정절, 순종, 검소, 근면 등
- 여성의 역할: 가정 내 역할, 남편과 시부모에 대한 예의 등
- 여성 교육: 경전 공부, 가사 기술 습득 등

내훈의 영향

- 내훈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행동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내훈은 조선시대 여성 교육의 중요한 교재로 활용되었으며, 여성들의 덕목과 역할을 규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내훈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첫번째 시선으로 갑니다. 문신을 새기다. 사랑밖에 모르는 로열패밀리.

자못 조선시대에서는 어떻게 문신을 새겼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조선시대 문신의 방식

- 조선시대에는 문신을 '삽면(揷面)' 또는 '경면(經面)'이라고 불렀습니다. 문신은 바늘로 피부를 찔러 먹물이나 물감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피부에 상처를 내고 그 위에 색소를 넣어 그림, 무늬, 글씨 등을 새겼습니다. 문신은 주술적 의미나 신분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강도 및 절도범에게 형벌로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문신의 용도

- 주술적 의미: 문신은 주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특정 문양이나 글자를 새겨 주술적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 신분 상징: 문신은 특정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형벌: 강도 및 절도범에게 문신이 형벌로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어우동은 4년간 17명의 남자를 만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남자 3명의 이름을 팔이랑 등에 새깁니다. 그래서 나오신 분들이 그 문신의 의미를 마음의 영토, 정복의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하셨네요.

 

전반적으로 어우동은 원래 문란했던 여자라기 보다,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일종의 복수의 개념으로 남편의 친척과 혹은 신분에 상관없이 사랑을 나누었고, 그 중에 마음까지 나눈 몇몇은 자신의 몸에 이름을 새겼다라고 봐야겠네요.

이 상황과 관련해서 세종시대에도 유감동이라고 하는 사람과 유사했는데, 결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어우동의 남편이 종친인 이유로 그 처벌이 좀 더 강했던 것이었습니다.

 

세종시대 유감동 사건과 성종시대 어우동 사건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유사점

- 둘 다 조선시대 기생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입니다.
- 양반 출신 부녀자였으나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기녀로 생활하며 여러 남성과 연애했습니다.
- 두 사건 모두 당시 사회적 스캔들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차이점

- 유감동 사건은 세종 시대에, 어우동 사건은 성종 시대에 발생했습니다. 
- 유감동은 간통 혐의로 처벌받았지만, 어우동은 강상죄(강간과 간통)로 처형되었습니다.
- 유감동 사건에서는 남편의 역할이 부각되었지만, 어우동 사건에서는 왕족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두 사건은 모두 조선시대 기생들의 스캔들이었지만, 발생 시기와 처벌 내용, 관련 인물들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감동 사건은 간통 혐의, 어우동 사건은 강상죄로 다뤄졌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재총화』

- 『용재총화』는 조선 전기 학자 성현이 고려부터 조선 성종대까지의 민간 풍속, 문물 제도, 문화, 역사, 지리 등 문화 전반을 다룬 잡록입니다.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00편이 넘는 필기와 패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용재총화』의 특징

1. 다양한 내용 다룸
   - 『용재총화』에는 야승(野乘), 시화(詩話), 소화(笑話), 일화, 신이담(神異談)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이를 통해 조선 전기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2. 저자 성현의 특징
   - 성현은 유능한 관료이자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 그의 이러한 특성이 『용재총화』에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역사적 가치

   - 『용재총화』는 조선 전기 사회와 문화에 대한 귀중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특히 문헌 자료가 부족한 시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두번째 시선으로는 성리학에 반기를 든 혁명가로서의 평가였습니다. 

 

여기서는 주로 그 시대 여성이 감내해야했던 상황들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생각 이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낮은 지위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삼강행실도에서의 여성의 목숨은 정절 다음의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칠거지악, 과부재가금지법, 재가녀 자녀 금곡법 등은 여성이 지켜야할 법들이었는데, 요즘 시대의 관점으로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지냈어야 했습니다.

어우동의 처벌동안 아주 빠르게 교부대시로 진행되었는데요. 이를 조선 초기 왕들이 나라의 기틀로 성리학을 세우기 위해 애를 쓴 것에 어우동이 걸린 것이라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성종의 경국대전 편찬에 있어 자못 방해가 될 수가 있어서 말이죠.

 

삼강행실도

- 삼강행실도는 조선시대 세종 16년(1434년)에 편찬된 윤리·도덕 교과서입니다. 백성들의 교화를 위해 중국과 한국의 역대 문헌에서 행실이 뛰어난 사람들을 선별하여 그림과 함께 설명한 한문본 책입니다. 

삼강행실도의 구성

- 삼강(三綱) - 충(忠), 효(孝), 정(貞)을 모범으로 삼아 구성되었습니다. 
- 제왕, 후비, 공경, 서민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각 인물의 행실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강행실도의 의의

- 당시 백성들의 교화를 위해 널리 읽혀진 대표적인 윤리·도덕 교과서입니다.
- 국문학적 연구와 조선 전기 회화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 당시 사회의 윤리관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입니다.

사티 문화

- 사티(Sati)는 인도 신화에서 유래된 관습으로,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가 자발적으로 남편의 장례 화장에 동참하여 함께 불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티는 '정숙한 아내'를 뜻하는 말로, 이는 인도 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사티 문화의 역사

- 사티 관습은 기원전 4세기경부터 인도 전역에서 나타났으며, 중세시대에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 특히 무굴 제국 시대에는 사티 관행이 널리 퍼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강제적으로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 19세기 초반 영국의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사티 관행이 금지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지속되었습니다.

사티 문화에 대한 논란

- 사티 관행은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 강제적인 측면이 있어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 특히 여성의 자발성 여부, 사회적 압력, 경제적 요인 등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 이에 따라 1829년 영국 식민 정부에 의해 사티 관행이 금지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티 문화의 영향

- 사티 문화는 인도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여성의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이는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동시에 여성의 헌신과 순종을 강조하는 인도 문화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 사티 문화에 대한 논란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인도 사회의 전통과 현대성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국대전

-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조선시대의 최고 법전으로,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 경국대전은 조선 초기의 법령 제도를 체계화한 것으로, 당나라의 율령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경국대전의 구성

- 경국대전은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의 6개 전(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각 전의 첫머리에는 해당 분야의 관청인 육조(六曹)에 소속된 속아문(屬衙門)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경국대전의 특징

- 경국대전은 가정의례에 있어서 허례허식을 없애고 의식절차를 합리화하여, 낭비를 억제하고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 또한 경국대전은 조선 시대 법제의 기본 틀을 마련하여, 이후 수많은 법전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경국대전의 영향

- 경국대전은 조선 시대 법제의 기본 틀을 마련하여, 이후 수많은 법전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 특히 가정의례에 대한 규정을 통해 허례허식을 줄이고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이처럼 경국대전은 조선 시대 법제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부 재가 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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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과부의 재가를 금지하는 법이 존재했습니다. 1485년(성종 16년) 반포된 『경국대전』에 따르면, 과부의 재가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자손의 과거 응시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과부의 재가를 직접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과부의 재가를 제한하는 법이었습니다.

 

재가녀 자녀 금곡법

- 조선 시대에는 재가녀의 자녀에 대한 차별 정책도 존재했습니다. 1436년(세종 18년)부터 재가녀와 삼가녀의 자손은 관직 진출이 제한되는 금고법(禁錮法)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삼가녀의 자손에 대한 차별이 더 심했는데, 『경국대전』에 따르면 삼가녀의 자손은 2대에 걸쳐 관직 진출이 제한되었습니다.

전통적 가치관의 영향

- 이러한 과부 재가 금지법과 재가녀 자녀 금곡법은 여성의 지위를 낮추고 차별하는 전통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특히 재가녀와 삼가녀에 대한 차별은 여성의 성적 순결성을 중요시하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보여줍니다.

칠거지악(七去之惡)

- 칠거지악은 중국과 한국 등 유교 문화권에서 남편이 일방적으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7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 칠거지악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자식이 없는 경우
  - 2. 음란하고 부도덕한 경우
  - 3. 질투심이 많은 경우
  - 4. 중병이 있는 경우
  - 5.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이 센 경우
  - 6. 도둑질을 하는 경우
  - 7. 시부모에게 불효하는 경우

전통적 가부장제의 영향

- 칠거지악은 여성의 지위를 낮추고 차별하는 전통적 가부장제의 산물입니다.
- 이혼 사유가 모두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며, 여성의 자율성과 권리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제도와의 관련성

- 주민등록제도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제도로, 가족 구성원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 이를 통해 여성의 혼인 상태와 자녀 유무 등을 파악하고, 칠거지악 등 차별 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감교청

- 감교청은 조선시대에 설치된 관청으로, 임금이 내리는 교명(敎命)들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 또한 조선시대 서적을 교정하고 책판을 보관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 대전감교청, 율문감교청 등의 명칭으로 운영되었으며, 이들 기관이 '대전감교청의 일을 다 관장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감교청의 의미

- 감교청은 조선시대 국가 통치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임금의 교명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기능을 통해 국정 운영의 정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또한 서적 교정과 책판 보관 업무를 통해 조선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에 힘썼습니다.

감교청과 주민등록제도

- 조선시대에는 주민등록제도가 발달했는데, 이를 통해 가족 구성원을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 이러한 주민등록 정보는 감교청의 서적 교정 및 보관 업무와 연계되어, 조선 사회의 통치와 문화 전승에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교부대시

- 교부대시는 사형 제도의 하나로, 사형 집행 기간인 추분(秋分)에서 춘분(春分)까지의 대시(待時)에 구애받지 않고 교형(絞刑)을 집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부대시의 적용 대상

- 교부대시는 십악대죄(十惡大罪) 등 중죄(重罪)를 범한 죄인에게 적용되었습니다.
- 대표적인 사례로 어우동 사건이 있습니다. 어우동은 1480년(성종 11년) 10월 18일 교부대시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교부대시의 의미

- 교부대시는 중죄를 저지른 죄인에 대한 신속한 처벌을 의미합니다.
- 이를 통해 조선 왕조는 엄중한 법 집행을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 또한 농사철을 피해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했습니다. 

교부대시와 왕실 스캔들

- 어우동 사건과 같은 왕실 스캔들의 경우 교부대시가 적용되었습니다.
- 이는 왕실의 명예와 권위를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번째 시선과, 네번째 시선의 경우에는 전문가의 개인적인 의견이 주를 이루어서인지 그렇게 새롭게 알고 싶었던 용어들이 없었네요. 설록 : 네가지 시선을 보면서 이렇게 정리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역사 공부도 되고, 또 다른 시각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네요. 다양한 용어들에 대한 공부도 되는 것 같아서 뭔가 지식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점점 역사 용어들이 익숙해져야할터인데요..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인물을 4 가지 시선을 볼 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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